※ 성체성사

 

※ 성체는 내 몸이며, 내 마음이다.

† 성체에 은총은 지구를 쥐고 있다. 내 은혜가 세상을 통해 성체에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성체는 내 몸 상징이다. 신비로 묶여진 상태

o 신비로 묶여진 상태란 무슨 뜻인지요?

† 빵 한쪽에 내 방언이 묶여 있다.

o 어떻게 방언이 묶이는지요?

† 성령을 거기에 전부 퍼붛어 넣었다. 성신과 함께 살도록

  성체는 내 몸이며, 내 마음이다. 내 몸, 마음은 성부와 일치하는 거다.

  그래서 나는 천국 갔다, 세상으로 왔다 한다. 성신을 타고(하느님을, 예수님 성자를 모시고 다니는 지혜)

  이 신비를(성체 은총) 안고, 너희들에게 복을 줄려고, 이제 그 신비를 거둘 때가(시기) 왔노라.

  공심판에는 내가 3일전에 오른다.(하늘나라로 미리 올라감이다.) 그리고서 지구를 걷게 된다.(멸망시킴)

  그 날이(그 불행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도록 하라.

o 그 날이란 뜻이 뭔지요?

† 영혼육신이 함께 죽는 날이다.

 

† 빵은 성체이고, 나는 성자예수

  밀떡은 고통으로 내 살을 성체로 만들고, 포도주는 인내 피로 너희들 생명수를(천국열쇠) 만든다.

  내 계약은 그리스도에 복음서에 다 들어있다.

o 그리스도 복음서라니요?

† 그게 바로 나 성체 안에 예수로다. 이 성체의 맛나를 생각해 보았니? 너희가 먹고, 마실 상처다.

o 상처라니요? 뭐가 그런지요?

† 피로 짜낸 내 죽음이, 부활하여 이룬 성사니라. 십자가에 죽음이 부활수를 이룬 영광에 기적이다.

  상처란 하느님이 노예로 시작한 기적이다.

 

모든 민족은 성체성사를 향하여 오너라. 은총이 쏟아진다.

  이스라엘 백성을 모으기 위해 성체성사를 통해 오겠노라.

  이천년 대를 향해 지름길이다.(가장 쉽고, 빠르고, 은혜로운 길) 이천년 문을 닫으리니,

  성체는 내 현존이다.(신이 살아있다는 증거)

 

† 성체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오는 거다. 신의 영광 → 내 심장이 되어라. 내 심장이다.(인내다.)

 

† 성체는 내 영혼육신에 밥이 되고,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하소서.

  밥이 되고는 힘이다.

  피가 되는 것은 사랑이다.

  살이 되는 것은 희망이다.

 

† 성체를 모시면 진리생명을 마음에 모신다. 진리생명은 사랑이다. 하느님 사랑이 우리 안에 산다.

  사랑은 모든 것을 다 누린다. 하느님 하자가(예수성심) 함께 하기 때문이다.

  진리생명을 지키는 자는 하느님 기적인 은총과 함께 산다.

  사랑은 하느님 진리생명이기 때문에 사랑에는 하느님이 항상 우리를 방문하신다.

  성모님은 선이다. 선은 항상 중개역할을 한다. 사랑을 일으키도록 이니라.

  선 없이는 아무도 하늘나라에 들어올 수 없고, 선에는 성모님 힘이 강하게 일어난다.

  내 성체는 사랑이니라. 사랑은 모든 것을 다스린다. 생명도 다스리고, 힘도 다스린다.

  사랑은 하늘나라 법칙이니라. 성체를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죄가 없느니라.

o 예수님, 무슨 말씀이세요. 죄가 없다구요?

† 내 성체를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죄를 지을 수가 없다는 거다. 내 성체를 모독, 독성죄를 짓지 말라.

  내 성체를 함부로 다루는 자는 진리로 치느니라.

  진리로 치는 것은 벌을 호되게 다루느니라. 거짓된 증언자이기 때문이다.

  성체로 모시는 것은 예수님 살과 피를 모시는 거다.

  예수님 살과 피는 정의와 평화와 사랑이다. 진리생명에 법칙이다.(계명이니라.)

  너는 이 글을(양임모마을메아리) 성신의 전능으로 엮는 거니라.

  성신에 전능은 지혜로 하느님 생명을 다루니라. 하자가 임하시는 날

  성신의 전능은 하느님 업적을 다룬다.

o 예수님, 하자가 임하시는 날이 뭔지요?

† 주의기도로 계명을 다루는 거다. 하느님에 법이니라. 십계명으로 다루어지는 성사다.

  하늘과 땅을 다스리노라. 계명으로 다스리는 성사니라.

  성신에 전능에는 삼위가 함께 일하신다. 나 하자가 그 안에 있기에다.

  성부는 내 안에 활동하고, 나 하자는 성신 안에 활동이니라.

  성부는 지혜로 내 안에 계명을 주고, 나는 성신에 지혜로 계명을 펴내니라. 성령으로 역사를 해서이다.

  성령으로 역사는 주관자가 있어야지 일처리를 하게 되노라.

  성신은 주관자가 없기 때문에 세 위 서로가 운집이다.

o 예수님, 운집이 뭔지요?

† 삼위 지혜가 뭉쳐서 움직인다. 성신에 전능으로 →

  성부의 지혜다. 성자에 사랑 안에 뭉쳐진 성부의 지혜가 내 안에서 펼쳐지는 거니라.

  성부의 지혜 선이(아름다움에 분출구 시작됨과 펼쳐지는 것) 성자에 사랑으로, 성신에 지혜 힘이 작용으로 역사를 일으킨다. 기적이니라. → 성령활동이다.

  성신이 활동하는 지혜 성령역사니라. 아름답게 꾸미고, 가꾸고, 세미나를 일으킨다.

  세미나는 미래를 향한 지혜다.

o 미래를 향한 지혜가 뭔지요?

† 아름다운 마음을 선으로 가꾸어 하늘에 역사를 세상에 펼치는 거다. 구원에 역사로이니라.

  이 시대는 성령에 역사가 대단하니라. 성신에 지혜가 비를 뿌리고 있다. 죄 짓지 말라고,

  성령을 못자리에 비료 퍼붓듯, 성령에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계명을 갈고, 닦고 하여라.

  세상 사람들이, 너희 때가 머리맡에 닿았느니라. 내 피는 세상을 다 지배하느니라.(통회하는 자는 다 받아준다.)

 

† 이 글이 펼쳐 세상에 나아갈 때는 공심판이 거의 이루어지느니라. → 시작 단계이다. 치열한 형벌, 무서움이다.

 

※ 너희는 내 성체를 모독하지 마라.

† 성체는 마음에 고향이다. 성체는 영혼에 안식처

  성체는 교회, 성체는 바로 교회다.

  교회는 지팡이다. 지팡이는 하느님에 힘이다. 힘은 하느님 은총이다.

  너희는 내 성체를 모독하지 마라. → 함부로 다루어 독성죄를 짓는 것 → 거룩한 사랑을 파괴한다.

 

† 성체에 생명은 사랑과 겸손이다. 사랑과 겸손은 힘이다. 힘은 지혜로 뭉쳐진 사랑이다.

  성체를 영하면 내(성자 예수그리스도) 마음을 모신다.

  내 마음은 하자 없는 성심이다. 하자 없는 성심은 성신이 임하시는 진리

  성신이 임하시면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모든 기적을 이루게 된다.

  공동체에 기적은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 사랑에 힘이 솟기 때문에

 

† 성체성사를 향해 바치는 모든 기도는 하느님 영광에 바쳐지는 기도다.

 

† 성체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오는 거다.

  내 심장이 되여라. 신의 영광 → 내 심장이다.(인내다.)

 

※ 너희는 성체를 함부로 다루지 말라.

† 성체는 내 마음이다. 성체를 영함은 내 마음을 가지는 거다. 내 마음을 성체에 두는 거다.

  그래서 성체 영하는 자가 선이 있으면 성체에서 내 마음이 자라나는 거다.

  내 마음은 기적이 함께 따라 다닌다. 성체 안에 기적이니라.

  너희가 내 마음을 닮아라. 그러면 성체성사가 크게 일어나리라.

  네 영혼 안에서 그리스도화가 된다. 그리스도화는 신과 영접, 기적이 함께 따라 사는 생활 이니라.

  내 성체를 함부로 영함은 불순함과 화를 입으리라.

  불순함은 하느님을 능멸한 죄이다. 화는 큰 보속이 따른다. 속죄에 벌이다.

  성체를 경건히 자랑삼음은 큰 복이다. → 믿음 안에 인내로 자기를 갈고, 닦고 하는 자는 큰 영광이 있으리라. → 하느님 은총이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 그와 함께 떠나지 않는다.

  너희는 성체를 함부로 다루지 말라. 포도나무 줄기가 마르는 것처럼 벌이 떨어지리라.

  내 성체를 함부로 대하는 자들에게 이르는 말이니라. 습관적으로 성체를 영하는 자들이니라.

  너희는 내 마음을 닮아라. 내 마음을 닮는 것은 인내다.

  인내는 잘 참는 거다. 자기를 죽이는 것, 자기 아집을 버리는 거다.

  자기 아집을 버리게 되면은 모든 것이 나와 함께 산다. 하느님과 역사를 함께 함이니라.

  하느님에 역사는 진리 안에 사는 거다. 내 마음을 성체에 담아 넣고,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다. 나를 닮으라.

 

† 성체에 흠숭을 가르치라는 거니라. 성체에 흠숭은 계명을 잘 갈고, 닦고 이다.

  성체를 모시고, 계명에 죄를 짓는 자들이다. 그 자들을 처단한다. 성체 독성죄이니라.

o 예수님, 성체 독성죄가 무엇인지요?

† 성체를 모시고, 입을 함부로 놀리는 자들이니라.

  이 자들은 남을 함부로 뜯어, 판단하는 자들이다. 성체에 사기죄다. → 성체를 마음에 모시지 않고, 성체를 입으로만 모시는 거다.

 

† 임모야, 나 여기에 감실에 앉아 있다. 피를 질질 흘리고, 땅에 앉아 있다.

o 예수님, 왜 감실에서 피를 흘리세요?

† 교회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는구나. 덕을 못 쌓고 있기 때문이다.

 

† 성체성사는 우리(모두가) 영혼을 길러 지혜롭게 만들고, 육신을 건강하게(성스럽게) 만드는 기적의 은총이니라. 내가 그 안에서 모든 일을 행한다.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 나의 명민함을 → 밝고(하느님의 지혜) 어질고(포용에 바탕) 슬기롭고(예술에 능력) 자비함을(관용에 사랑) 성체성사 안에 다 있다.

  나는 너희들이 원하는 모든 상아탑이다. → 소원대로 이루워지는 모든 조건의 제반 → 은총 자(보금자리)

 

† 성체 앞에서 기도를 하는 것은 사랑을 충전이다.(사랑에 힘을 길러낸다.)

 

※ 성체조배

 

† 예수성심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성체 앞에서 기도 드리는 것은 어떤 기도이든(작은 것도) 성체조배가 된다.

 

† 성체조배는 하늘나라 영광이다. 예수님을 흠숭하기 때문에

 

† 성체조배는 거룩한 길, 예수님 사랑이 함께 사는 길

  사랑이 함께 사는 길은 성체성사에서 온 기적이 다 일어난다.

 

† 매 주마다 성체강복을 해라. 성체강복에는 하느님, 내 성신이 내린다.

 

† 성체조배를 할 때는 십자가에 예수를 생각하고 해라.

  십자가에서 내가 마지막 하던 말 "목마르다." 내 성심이 너를 얼마나 원하는지 아느냐?

o 그러면 모든 이에게 다 해당되는 말이네요.

그렇다. 인간 삶에 가치관을 내게 향해 살으라고, 영혼들을 목말라 한 거다.

  나를 향한 믿음은 언제나 수궁이다. → 천지창조에 진미를 다 안고 있다. 하느님에 사랑 지혜이니라.

  너희가 가장 바라는 소망이 이루어진다.

  나를 향한 믿음은 언제나 나를 버리는 단순함이니라. → 자신을 그리스도 앞에 온전히 받치는 것.

 

※ 성체 앞에서 묵주기도

† 예수성심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성체 앞에서 묵주기도 함은 성체조배가 된다.

  성체 앞에서 묵주기도는 완벽한 성체조배니라.

  내 하자에 공생활이 내 성삼께 영광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받은 피다. → 고통, 근심, 죽기까지 한 십자가니라. 부활로 이루어진 사랑이고,

  묵주기도는 내 성체조배가 되는 훌륭한 기도이니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는 극기가 모두 성체조배로 오너라. 내 하자와 함께이니라. → 예수성심 사랑이, 기적이 항상 임하신다.

  천주성자, 천주성신 영광으로 성령에 활동이(성령 힘) 크게 일어나느니라.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신께 하고,

  내 성체성사는 신비다. → 너희가 가지고, 갖고 싶어 하는 모든 표적이니라.

  묵주기도 환희가 성신께 즐거움을 드린다.

  묵주기도 통고가 성자께 사랑을 드린다.

  묵주기도 영복은 성부께 흠숭을 드린다. 최상의 영광이니라. 삼신께 → 성부. 성자. 성신께 드리는 영광이니라.

  성모께는 희망이고, → 기적을 일으키는 관문 → 크게 성공으로 엮는 추수 역할이다.

 

† 성체조배는 성로를 열리게 한다.

o 성로가 뭐지요? 예수님

† 거룩한 길

o 거룩한 길은 뭐구요?

† 예수님 사랑이 함께 사는 길

o 사랑이 함께 사는 길은 또 뭐구요? 예수님

† 성체성사에서 온 기적이 다 일어나는 길

 

† 성당에서 기도하는 자체가 성체조배다. 성체 앞에서 기도하면 내가 기쁨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묵주기도로 내 성체 앞에 오너라. 주의기도는 너희가 가지고, 묵주기도는 나와에 만남이다.

  주의기도는 받쳐야 할 길, 닦아야 할 길, 너희가 살아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주의기도는 사랑이 일어난다. 악을 막게 된다.

  성체기도는 나와 같이 있는 시간이 길수록 좋다.

o 긴 시간을 어떻게 하며 있어야 하는지요? 기도하며, 생각하는 것뿐인걸요.

† 마음과 정신만 살아있으면 된다. → 일터에서, 쉼터에서 나를 생각하면 된다.

  성당에서 성체조배 하는 것은 내 성심을 위로하고, → 고통에 동참, 기쁨을 주고

  일터에서 삶으로 조배하는 것은 하느님을 흠숭, 기쁨에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예조노오레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성체 안에 살아있는 생명이다. → 너희가 받아야 할 길, 살아야 할 길이기에 거기에 다 있느니라.

  나는 진리요. 생명에 씨앗이다. 너희가 닦아야 할 계명이 거기에 있느니라. 노동에 십자가로

  나는 길이요. 생명에 씨앗이다. → 진리에 생명을 뿌려(낳아) 열매를 낳으니라. → 영광에 추수

  이 모든 기적이 성체를 통하여 이루어지느니라. 사제들 손을 통해 진리로 일어나 윤리에 생명을 다듬느니라.

  겨자씨의 비유가 세상을 낳듯이 하늘에 은총이 세상을 가꾸니라.

  성목요일은 성체의 밤이다. 알렐루야 → 가난한 자, 병든 자 다 내게로 오라. 나 그 안에서 살으리라. → 함께 기거함이다. 사랑으로

  내 영혼이 죽기까지 고통 한다. → 성체에 고독이 외로워한다. 슬픔과 괴로움이다.

  감실을 찾아주지 않는 너희 가난 때문이다. → 인색한 욕심이 나를 저버린다. → 세속 일에 빠져 나를 소홀히 대접하는구나. → 거지 대하듯 한다.

  묵주기도로 내게 위로를 다오. 내 성심을 공경하는 거다.

  묵주기도는 내 힘과 사랑이 한데 뭉쳐있는 거다.

  힘은 내 고통에 십자가에 인내이고, 사랑은 기적을 낳는 척수이고, → 가장 높은 능력지혜

  너희는 그 지혜를 배워라. 아라마리아 → 지혜와 생명이 꿀벌처럼 일어난다. 성체에 기적이

  성체를 통하여 모든 기적이 일어난다. → 세상을 다스리고 있기 때문이다.

 

※ 성체조배 끝에 기도

†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자비를 베풀면 인내가 열린다. 인내가 열리면 기적이 쏟아진다.

  성체조배 끝에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자비를 주소서 하는 말에 뜻이다. → 은총을 주소서 다.

 

※ 신령성체 기도(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 생활하는 일터에서 기도로 모실 수 있는 신령성체)

† 주의기도 7곱번 해라.

  성모송 5섯번 하고,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2번해라.

  기리에 엘레이숀. 그리스떼 엘레이숀 2번 하고,

  십자가위에 그리스도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라.

 

† 주의기도 7곱번은

  1. 칠성사에 은총이 내리게 하라는거다.

  2. 칠성사에 은총이 머무는 기적이다.

  3. 사랑에 힘이 하느님 영광과 함께이니라.

 

† 성모송 5섯번은

  1. 내 오상을 공경하는 거다.

  2. 그리스도안에 일치하는 삶이다.

  3. 예수성심 공경을

 

†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는

  1.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이 내린다.

  2. 하자없으신 마리아님을 통하여 그리되면 기적이 일어난다.

  3. 기적은 은총을 구하는 거다.

 

† 기리에 엘레이숀, 그리스떼 엘레이숀은

  1. 사랑이신 성자에 힘을 빌어내는 거다.

  2. 사랑이 무르익는다. → 사랑으로 일어나는 기적이니라.

  3. 그리스도적 사랑 형제애

 

† 십자가위에 그리스도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는

  1. 환란과 핍박을 막아주는 중이다.

  2. 힘에 힘을 일으키는 기적

  3. 내적 평화니라. → 거룩한 삶으로 이어지는 사랑 → 기적과 함께 영원으로 가는 길이다.

 

※ 성체 모실 때 예수님께 봉헌

† 토요일에는 겸손을 성체 모실 때 예수님께 봉헌하라.

  일요일에는 순명을 봉헌하라.

  월요일에는 인내를 봉헌하고, 받친다.

  화요일에는 가난을 봉헌하고(절제로 자신을 다스리는 삶)

  수요일은 감사를 봉헌하고,

  목요일은 흠숭을 봉헌하고,

  금요일은 사랑을(인애) 봉헌하라느니라.

  이게 성체께 받칠 의무이다. 의무이니라. → 꼭 필요성으로 지켜야 될 도리이니라.

 

† 금요일 날은 성스러운 날이다.(고난에 십자가)

  목요일은 사랑에 날이다.(애덕)

  수요일은 순교에 날이다.(청빈 덕)

  화요일은 불에 날이다.(지혜 터득)

  월요일은 겸손에 날이다.(사랑을 실천)

  주일은 성삼에 날(영광이다.)

  토요일은 인내에 날이다.(기적에 은총이 송두리째 일어난다.)

 

  너희 세상에 날로 맺어진 인연이다.(은총 길) 이 길은 계명하고, 사랑하고 맞닿는 길이다.

  진리 계명하고, 윤리 사랑하고 합쳐진 인생 길이다. 이 길은 특기로 차지하는 인생길이다.

  진리는 선이고(계명) 윤리는 착함이다.(사랑) 진리 선으로 성스럽게 윤리

 

† 수요일이란? 수요일은 사람에 날 → 사랑에 증인(여호와에 증인)

  목요일은 하느님에 날 → 성사제정, 영광(영광에 성사를 이룸)

  금요일은 인내의 날 → 극복(극기)

  토요일은 효성의 날 → 효도

  화요일은 계명의 날 → 희생(영광)

  월요일은 연옥영혼의 불침번(구해주는 기도)

  일요일은 겨레의 걸머질 영광에 날 → 십자가로 사랑을 전 인류에게

  토요일은 주 그리스도 사랑

o 모두가 알송달송이예요.

† 차츰 차츰 네가 다 알게 된다

 

※ 성체성사에 은총

† 성체성사에는 무궁무진한 은총이 내려간다.

  첫째. 겸손에 의지 → 남에게 굽힐 줄 아는 마음이니라.

  둘째. 은총은 사랑이다. → 남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마음을 준다.

  셋째. 아집을 버린다. → 자기 욕심을 제거시킨다.

  넷째. 지혜가 쏟아진다. → 옳고, 그름을 판단, 선을 향해 일한다.

  다섯째. 계명을 준수 → 완수

  여섯째. 사랑을 일으킨다. → 자기를 희생한다.

  일곱째. 인내를 베풀 줄 안다. → 경거망동한 일로 남을 헐뜯지 않는다.

  이 모든 은총이 칠성사를 통하여 나아간다.

 

※ 성체성사의 맛

† 성체성사의 신 맛은 독버섯 → 영혼을 죽이는 음식에 탐욕

  구수운 맛은 희생으로 드리는 성부께 영광 드릴 때

  부드러운 감칠 맛(달고, 단맛) 하느님께 기쁜 감사, 사랑을 드릴 때

  물로 변한 맛은 쓸모(쓸데) 없는 공상을 할 때

  탄내 쓴 음식 맛은 악으로 죄를 범할 때

  빳빳할 때 맛은 못된 습관으로 교만을 부릴 때

  무미한 맛은 나약함에 누워 있을 때

 

※ 신학. 철학. 이학

 

† 신학윤리는 생명을 다루고, 윤리신학은 법을 다룬다. 입법. 사법. 행정이니라.

  입법은 교회가 다루고, 사법은 정치(나라) 다루고,

  행정은 자신을 다루니라.

  입법은 하느님 선을 다루고, 사법은 하느님 계명을 다룬다.

  행정은 교회가 나아갈 길을 여는 거다.

  선은 하늘나라 생명이다. → 씨를 뿌리고,

  법은 하늘에 계명이고, → 씨를 가꾸고,

  행정은 자신에 삶을 가꾸는 거고, 씨를 거둔다.

  윤리신학은 연구하는 거다. 하느님 은총으로 살아가는 길을

  하느님 은총으로 살아가는 길은 십계명이다. 지킬 계명에서 하느님 은총이 터지기 때문에

 

† 신학으로는 하느님 뜻을 분별 못한다. 윤리철학이 있을 때 신학을 연구한다.

 

† 교회는(진리는) 입법. 사법. 행정

  입법은 교리를 가르치는 것

  사법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

  행정은 교회가 다스리는 것

 

※ 과학. 의학. 신학. 철학

† 과학은 우주 사물을 다루는 것이고,

  의학은 생태계 인간 체를 다루는 거다.

  신학은 천운이다.→ 하늘에 영광, 땅을 지배하는 거다.→ 사랑의 생명이란 뜻으로 천하를 다스린다. 하느님 말씀으로

  철학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조건을 제시해 주는 거다. 철학을 다루는 자가 잘못 다루면 세상을 뒤바꾸는 일이 생긴다.

 

† 신학은 생명에 말씀이 천상천하에 모든 생명을 다루시고,

  철학은 생명에 말씀에 법도를 다룬다. → 악에 죽음, 선에 영광이다.

  이치는 생명에 말씀 영광을 일으킨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바라시는 뜻은 마귀하고 절교하는 거다. 그래서 진리는 마귀 악과 싸우는 거다.

  윤리는 선을 닦고, → 계명을 닦는다. 선을 향해

  이치는 사랑을 실천, 은총을 받는다.

  철학에 법도는 하느님 계시를 지켜 나아가는 길이다. 하느님 계시는 믿고, 따르고, 닦는 길이다. 윤리의 계명이니라.

  윤리의 계명 십계명은(10계명) 창세기를 열어놓았다. → 인류가 짊어지고 갈 십자가다. 계명을 지키기 위해 악과 싸워야 하는

  하느님 생명에 말씀이 인간에게 밀알이 되면 인간이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이 된다.

  하늘나라 영광 안에 살기 때문이다. 초자연에 힘이 일어나는 삶이다. 기적에 마니피캇 → 기쁨. 평화. 즐거움. 행복이다.

  인간이 밀알로 썩어서 열매를 맺는 것은 인간이 많은 인내와 많은 희생, 거룩함을 크게 일으키는 것을 말씀하신다.

 

※ 철학사상

† 철학사상에 물들면 거짓 증언자가 된다. → 입으로는 하느님을 섬기지만 행동은 하느님을 배반하게 되느니라.

  실효를 못 거두는 일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지혜로운 덕으로 다루지 아니할 때는 위태로운 거다. 하느님과 맞서는 길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집을 꺽지 못하는 자들은 철학을 운운해서는 아니 된다.

  아집 → 자기 욕심, 욕기 무엇이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 철학사상에 잘못 들면 예수님을 능멸한다. 거만해 지기 때문이다. 거만은 교만에 집이니라. → 죄가 크게 머물러 사는 곳이니라.

 

† 철학에는 악이 공전하고 있다. 그래서 철학은 잘 다듬어야 되느니라. 철학사상에 물들지 않도록 이니라.

  철학사상은 사람을 그럴싸하게 이끌고 있느니라. 하느님과 적대감을 갖도록 이니라.

  아집이 쎈 자들은 이 감화에 다 모두들 빠저 들고 있다.

  그래서 아집이 돌고래 아집이니라. 묘기를 부려가면서 사람을 괴롭히는 일이다.

  괴롭힘은 사람을 혼돈을 만들게 하여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지혜로운 자는 들으라. 너희가 신학을 개방하여 철학을 가르치는데, 철학은 겸손 되히 받아들이는 자는 신학자이니라.

  철학은 인간 공부이기 때문에 얌전하게(소리 없이) 겸손하게 실천하는 자는 성인에 길을 걷게 되노라. 죽음과도 같은 신앙이니라.

  자기 아집을 꺽고(버린다.) 그리스도에 몸으로(비천한 자세다.) 살아가기 때문이다.

  너희(인간) 철학은 인생을 탈바꿈하여 남을 누루려는 고집, 욕심이니라.

  나를(그리스도 참사랑이다.) 누르려는 헤로데에 나쁜 욕심처럼 이니라. → 사람 죽이는, 일삼는 욕심이니라.

  신학교에서는 자기를 다스리는 철학을 가르치지, 자기 오만과 자만을 일깨우는, 하느님을 반대하는 철학사상은 금물이니라.

  일깨우는 → 크게 일으키는 짓이니라.

  반대 → 배반

  철학은 인체를 해롭히니라. 자신이 망하고, 남을 해친다. 자신은 불행으로 인생이 끝나느니라.

  하느님 벌이 따라있기 때문이니라. 하느님을 능멸한 벌이니라.

  남을 해치는 것은 남에게도 똑같은 씨앗을 뿌려 더 나쁘게 가라지의 비유로 클 자들을 키우기 때문이다.

  이 두(두가지) 종류는 둘 다 망가칠 영혼에 악이니라. 죄에 무덤을 파는 자들, 철학에 좋은 교양과목을 죽이느니라.

  철학에 주자학 공자는 철학에 대가였다. → 실천하고, 살았느니라. 하늘에 뜻을 세상에 펼쳐 내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삶이니라.

  시간은 한 눈 팔지 않고, 선을 행하였고, 선을 가르침이니라.

  공간은 사람에 도리를 가르치여 하늘나라 하늘에 역사를 일으켰느니라. 삼강오륜에 심오한 도리이니라.(진리)

  삼강오륜은 10계명과 중축을 이루느니라. 동양에 철학이니라.

 

† 삼강오륜을 다 지켜야 한다. 십계명 종족

  삼강오륜은 길은 틀려도 십계명과 뜻이 같으니라.

 

※ 사자소학

† 사자소학은 철학에 입문이다.

  인간이 자라남에 있어 인생살이 나아가야할 길에 사람에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육신이 악덕 업을 쌓지 말고, 선으로 키우라느니라.

  사자소학은 가정교육의 실천을 표하는 것이고, → 사랑에 옳고, 그르고, 바른 도리이다. 사람에 바른 인생을 가르치는 것이다.

  동양에 철학은 만수무강이다. → 단단하고, 교리가 깊다. 그래서 중국에 군자가, 성인이 많이 낳았다.

  군자는 큰 인물이다. 착한 일꾼, 성인은 하늘에 뜻을 위해 산 자다.

  착한 일꾼은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산 사람이고, → 역사하는 사람들이다.

  하늘에 뜻을 위해 산 자는 하늘에 도를 위해 선도를 일으키는 자들이다. → 선구자에 길을 닦는 인물들이니라. 학자들이다.

  학자들이 좋은 도에 길을 다듬어서 내놓으면 착한 일꾼들이 따라 행하는 일들이다.

  동양에 철학은 세계를 쥔다. 뜻이 그렇게 광활하니라. → 넓고, 푸르고, 높게 뛰니라. →

  하늘에 역사가 동양철학에 다 들어 있어 쉽게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자소학은 교육에 높은 가치가 있느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이기 때문이다.

  살생을 일삼는 자들이 살생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모태에서) 부모가 사자소학을 가르친다면 그 아이는 커서 반드시 성공한다. 부모에 사랑이 자식을 키우기 때문이다.

  태중에 아기를 두고, 부모가 사자소학을 실천해 보아라. 모두다 덕이 있는 행동이지,

  부모의 사자소학 삶이, 태중에 태아교육을 시키는데, 핏줄로 이어받은 태교교육이다.

  덕이 살찌우는 교육 가치이다. 덕이 덕으로 일어난 → 선이 선으로 일어나는 교육이니라.

  부모가 자식을 잘 키워 놓으면, 그 자식은 선에 빗나아갈 수가 없느니라.

  부모가 뿌린 선이기 때문에 악에 유혹이 쓰러트리지 못한다. 유혹을 받으나, 그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일어난다.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성장과정에 사자소학 태교가 자라나면서 자신이 자라면서

  몸으로(육신) 직접 받아 일으키는 가정교육에 사자소학이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부터 아집을 꺽어야 결과가 결실을 맺게 된다.

  자식을 잘 키워 결혼으로 시작, 모태 생명체를 잘 교육시켜 세상 교육 사자소학을 제대로 배우게 되느니라.

  부모들이 사자소학 삶이, 태교를 잘 시켜 세상 밖으로 태여난 애기가 삶으로 사자소학을 익힌다면 성인에 덕을 쌓는다.

  욕심을 버리고(아집을 꺾고) 하늘에 이치를 따라 살어야 하는 공부이기 때문이다.

  철학사상을 일깨워주는 도 다. → 하늘에 이치를 따라 살어야 하는 도리이니라.

  철학은 사람이 살어야 하는 길을 제시해 주는 거다.

 

※ 자연은 진리상징, 인간은 윤리상징

† 자연에 모든 것이 진리상징이다. 인간은 윤리상징이고,

  진리는 윤리를 위해 있는 거다. 윤리에 빛은 진리를 더욱 아름답게 꾸미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에(진리) 더욱 아름답게 꾸미는 악세사리(윤리)

  그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는 빛을 내기 때문이다.

  인간은 윤리로(십계명) 진리에(하느님 법) 빛을 더욱 아름답게 내야 되는 거니라.

 

† 윤리는 하느님 계명이고, 진리는 하느님 법이다. 하느님 계명이 십계명이다. 진리를 가름하는(빛을 내는 길)

  진리는 주에 기도이다. 주에 기도는 진리에 법도이다.

o 진리 법도가 무엇인데요?

† 가야 할 길, 밟아야 할 길, 밝혀야 할 길, 가르쳐야 하는 길, 윤리는 이 진리를 일으키는 길이다.(거룩하게 추수)

  윤리가 죽으면 진리는 찾지 못한다.(싹이 자라지 못해 가라지 비유만 남긴다.)

 

† 진리는 사랑이다. 윤리는 덕이다.

  사랑은 믿음이고, 덕은 표양이다.

  진리는 믿음이여야 되고, 윤리는 표양이 따라야 된다.

  이건 하느님에 오묘한 섭리에 말씀, 오묘한 섭리 말씀은 실천에 옮겨야 하는 말씀

 

† 진리는 사랑을 심는 길이고, 윤리는 사랑을 가꾸는 길이다.

  사랑을 심는 길은 요버에(욥 성인) 늪이고,

  사랑을 가꾸는 길은 가다꼼바 기적이다. → 가나안 혼인 잔치처럼 크게 일어나는 길(사람들에게 들어나는 길)

 

† 진리는 윤리를 아름답게 가꾸고, 윤리는 진리에 빛을 낸다. → 선이 결실을 낸다. 사랑으로써 이긴다. →

  하느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

  윤리가 썩으면 진리는 무너지고(파멸 멸망)

  진리가 썩으면 윤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못함 → 생명이 부서지고 망가짐 → 선이 완전히 죽어버린다.)

 

† 진리가 빗나아가면 윤리가 타락한다. 윤리가 타락 행위.

o 예수님, 어떻게 윤리가 타락 행위인지요?

† 윤리가 좀 먹는다. 윤리가 좀 먹어 비겁자 노릇이다.

o 예수님, 무엇이 비겁자 노릇인지요? 뜻을 쉬게 가르쳐주세요.

† 죄에 아우가 된다. → 앞잡이 노릇이니라.

 

† 내(하느님) 사랑의 노예는 진리다. 진리는 선, 사랑 겸손이다.

  진리는 하늘에 선이기 때문에 내 사랑에 노예다.

  사랑 겸손은 하늘에 은총이니라. 자기를 지극히 낮추는 자는 사랑 겸손이다. 선 안에 진리이니라.

  내 사랑, 내 겸손이다.

 

† 교회는 하느님 은총을 집행하는 곳, 장소이기 때문에 신자들은 교회에 순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교회 은총을 다루시는 분은 나 예수 그리스도이다. 교회는 진리 앞에 순종해야 되느니라.

  진리를 다루시는 분은 나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니라.

 

† 너희는 하느님 계명을 뺏지마라.

  하느님 계명은 이 길이나 너희들 영혼 안에 감추어 놓고, 육신이 진리로 거두어들이는 윤리이니라.

  내 주에기도 십자가를 지는 자는내 계명인 영혼생명으로 육신생명도 자랑스럽게 다루는 도다. 히말랴산을 강타하는 강풍(태풍) 바람처럼

  성령지혜로 육신을 보호, 영혼지혜로 성령을 다루게 되노라.

  하느님 지혜가 육신으로 받아내는 은혜성령이 있고, 영혼으로 다스리는 지혜성령, 거룩함이다.

  육신성령은 기쁨이 따르고, 영혼성령은 평화가 따른다.

  성령도 선으로, 덕으로 잡을 때는 인내에 십자가를 지게 된다.

  자신을 영혼 안에 잘 다스리는 것. 쌍타 마리아에 길을 걷게 된다.

  본성으로 잡을 때는 온갖 악이 다 등장이니라. 마치 루치뻴처럼 사람을 살려놓고 죽인다. 영혼을 죄로 먹어 버리기 때문이다.

  쌍타 마리아에 길은 성모님에 덕에 길이다. 오관삼사를 정결하게 가꾸는 것은 덕에 길이니라. 수덕하는 자

  덕은 겸손에서 나오고, 선은 인내에서 나온다.

  지혜 선은 덕을 잡고 있기 때문에 지혜에 마음이 착함이니라. 영혼에 육신을 내놓음

  선은 진리, 착함은 윤리

  지혜 선은 진리, 지혜 착함은 윤리

  지혜 진리 선, 지혜 윤리 착함이니라.

  진리생명은 선이고, 윤리생명은 착함이니라.

  영혼에 지니고 있는 지혜생명

  진리 선, 윤리 착함, 지혜 영혼생명이다.

 

※ 진리철학. 윤리철학. 자연신학

† 네 일이 전 세계를 휩쓸 작업이다. 신학은 진리교리이고, 철학은 윤리교리이고, 이학은 생명교리이다.

  진리철학. 윤리철학. 자연신학이니라.

  복수는 입으로도 할 수 있고,

  마음으로도 할 수 있고,

  행동으로도 할 수 있고,

  정신으로도 할 수 있다.

  입으로 상대방을 비방, 상 삼계다. 1계, 2계, 3계명을 모조리 범한다.

  마음으로는 못되게 남을 저주, 하 칠계다. 4계명부터 십계명까지 죽는다.

  행동으로는 원수를 살생, 10계명까지 모조리 죽인다. 1계명에서부터

  정신으로는 지혜를 죽인다. 십자가를 지워줌. 인내 사랑을 뽑아버림, 영혼을 앗아가는 짓

 

※ 육신생명, 영혼생명

† 생명이 육신생명, 영혼생명이 있다.

  지혜생명은 선

  마음생명은 덕

  생활생명은 인내

  성격생명은 표양이니라.

o 성격이 인내라며, 왜 표양이지요?

† 영혼생명, 육신생명을 갈라놓기 때문에 영혼에서 나오는 지혜 선은 표양을 일으킨다. 마음에서 나오는 착함에 덕은 인내를 쌓고,

  신학이 알을 까서(생명을 내놓음) 육신생명을 낳아,

  철학으로 키워 이치생명으로 거두어(영광에 결실)

  신학으로 받치게 된다. 돌돌 뭉쳐진 사랑이다.

  이치로 추수는 선에 표양인 겸손과 덕에 인내인 사랑이니라. 겸손과 사랑은 순명을 조절한다.

  순명은 행동을 거룩하게 일으킨다. 다마스코 →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른다. 너희는 영혼에 질병이다.

o 예수님, 질병이 무엇인데요?

† 신학은 철학에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한다. 너희 육신은 영혼에 재물이기 때문이다.

  성격이 영혼에 성격은 표양이 따르고,

  육신에 성격은 인내가 따른다.

  마음이 영혼에 마음은 덕이 따르고,

  육신에 마음은 생활이 따른다.

  영혼에 행동은 순명에 거룩함이고,

  육신에 행동은 기쁨을 주는 거다.

  영혼에 생활은 자중하는 판단력

  육신에 생활은 사랑에 십자가

  영혼에 선은 진리 평화

  육신에 선은 윤리 희생이니라.

  너희가 갈 길이 이 안에 들어 있으나, 계명의 십자가로, 사랑으로 이니라.

  계명은 겸손이다. 십자가는 인내다. 사랑은 순명에 존경

  만약에 이 계명들이 거짓으로(위선) 사용될 경우 악에 왕으로 둔갑이니라.

  거짓은 언제나 위선으로 본성을 감추고 있느니라. 무서운 음모이니라.

 

† 앞으로 교회를 지을랴고 그리 힘쓸(애쓸) 필요가 없다. 큰 회사를 빌려서 쓰면 된다.

o 왜요?

† 모두 신자가 되면 회사를 이용해서 쓰거라. 신부가 회사에로 가 미사를 드리면 된다.

 

※ 산타, 쌍타의 뜻

† 산타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 선이란 뜻이고,

  쌍타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 은총 역사라는 말이다.

양임모젬마

※ 일곱 가지 지혜

† 영혼에는 진리의 선을 다루고, 육신에는 윤리의 덕을 다룬다.

  진리에 선과 윤리에 덕이 부합되면(합쳐지면) 선에, 덕에 생활이다. 표양된

  선에, 덕에 생활에는 7곱 가지 지혜가 따른다.

  7곱 가지 지혜는 슬기. 통달. 의견. 굳셈. 효경. 두려워 함. 지식. 지혜가 따른다.

  이 일곱 가지 지혜에는 사추덕이 따른다. 지덕. 의덕. 용덕. 절덕

  이 사추덕이 하느님의 관상학을 다룬다.

 

† 칠투시를 쏘아 볼까요?

o 예수님,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요?

† 슬기. 통달. 의견. 굳셈. 지식. 효경. 두려워함이니라.

  슬기는 지혜의 광란 → 사물을 바라보는 힘, 생과 사를 판단

  통달은 지혜 힘 → 아는 힘, 꿰뚫는 힘

  의견은 모자이크 아름답게 만듦, 선에 창조(만들어냄, 옳게, 바르게)

  굳셈은 강한 힘 → 강한 의지, 버티는 힘

  지식은 명오로 아는 힘, 지혜 광명 → 계시. 투시. 환시(영시) 발사(뚫는 힘)

  두려워함은 죄와 악을 쳐부수는 것 → 지혜를 몽땅 선으로만 돌리는 거다.

  효경은 사랑이 익는 지혜 → 만물이 소생하는 것처럼 하느님 사랑이 영광으로 일어난다.(흠숭의 예배)

 

♣ 성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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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임모젬마